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스 샤워 (문단 편집) === 4~5세 === 장거리 G1마 답지 않게 처음엔 중앙에서 '''단거리''' 신마전을 이기면서 통과를 하였다. 원래 라이스 샤워는 '''스프린터'''를 목표로 정하고 있었으나 이후 단거리 중상에서 11착으로 침몰하면서 이후 거리를 점점 늘어가며 성적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1,600m OP에서 1착을 한 뒤 [[사츠키상]]에서 8착으로 침몰을 하였다. 물론 11번 인기였기 때문에 기대주는 절대 아니었다. [[일본 더비]](도쿄 유슌)에서 기대가 떨어지며 '''16번 인기'''라는 기대도 안됐던 대회에서 무려 2착이라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배를 걸었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완전히 깨트려버리는 뜬금없이 나타난 기대주로 부상한다. 이후 [[레거시 월드]]에 밀려 2착을 한번 더 하고 킷카상의 전초전이라고 할수 있는 교토신문배에서도 2착을 하였다. 이때부터 급부상하여 드디어 미호노 부르봉에 이어 2번 인기를 가져갔다.[* 2400미터 조차 짧다는 평가를 들었던 라이스 샤워가 더비에서 2착을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92년도 클래식 세대는 장거리와 단거리는 강하지만 중거리는 약했던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킷카상에서는 [[심볼리 루돌프]] 이래 첫 '''무패 클래식 삼관 달성'''을 노리던, 라이스 샤워의 커리어에서 G2 진출 이래로 단 두 번을 빼고는 항상 우승을 가져가던 [[미호노 부르봉]]을 저지하고 승리했다. 이 때 당시의 어그로는 [[쿄에이 보우건]]이 주로 가져갔는데, 도주 위치에서 부르봉과 경합을 벌이느라 3000m는 처음이었던 부르봉의 페이스를 흔들었다는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시의 무패 3관이 좌절됨에 따른 분노와 라이스 샤워에게 스테이어라는 인식이 없던 때이기에 생긴 감정적인 여론일 뿐이다. [[쿄에이 보우건]]의 도주로 페이스가 어지럽혀진것은 미호노 부르봉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 [youtube(-1QxQRKvjmU)] || || 2번째 무패삼관마 도전 [[미호노 부르봉]] VS [[일본 더비]]에서 갑자기 급부상한 [[다크 호스]] 라이스 샤워(1992.11.08) || 라이스 샤워에게 첫 G2 출전이자 우승 기회였던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 4착을 할 때, 첫 G1 출전인 사츠키상에서 8착을 할 때, 1992년 [[일본 더비]]-세인트 라이트 기념-교토신문배 3연전에서 모두 부진할 때 이 중 [[일본 더비]]와 교토신문배에서 승리를 가져간 말이 바로 미호노 부르봉이었다. || [youtube(k7CG7gC1rO4)] || || [youtube(GAAq-GyARZc)] || || 일본 최초 '''단일대회 3연패 도전'''의 [[메지로 맥퀸]] VS '''라이스 샤워'''의 천황상 혈투(1993.04.25) || >'''"관동의 자객, 라이스 샤워.[br] 천황상(봄)에도 압도적인 인기였던 [[메지로 맥퀸]]을 깨트려버렸습니다"''' >'''"関東の刺客、ライスシャワー。[br]天皇賞でも圧倒的な人気のメジロマックイーンを破りました"''' >-----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 1993년 천황상(봄) 우승 콜 그리고 이듬 해 [[천황상 봄]]에서 일본 경마 역사상 최초 '''동일 G1 3연패'''에 도전하던 [[메지로 맥퀸]]을 상대로 무리하게 훈련해서 다른 조련사에게 말이 망가질거란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이 정도까지 하지 않으면 맥퀸은 이길수 없다는 말과 함께 한계까지 몰아붙여 단련하였고 이러한 훈련으로 끝에 마지막 직선에서 치고 올라가며 맥퀸을 물리치고 무려 트랙 레코드를 달성하며 승리해 맥퀸의 3연패는 이렇게 좌절되었다.[* 2021년 현재까지 일본 경마의 주요 코스인 잔디에서 동일 G1 3연패를 달성한 말은 아직 없다. 훗날 맥퀸의 외손자인 [[골드 쉽]]이 G2인 한신대상전을 3연패 했고, G1 그랑프리인 [[타카라즈카 기념]] 3연패를 달성할 뻔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골드 쉽]] 문서 참조.) 다만 더트와 장애물은 이미 G1(Jpn1) 3연패를 달성한 말이 나왔다.] 이후 언론에 의해 '간토에서 온 자객'이니 '검은 헬멧'[* 그냥 단순히 순번이 2번조여서 기수의 헬멧이 검은 것일 뿐인데도, [[스기모토 키요시|스기모토 해설]]의 언급처럼 맥퀸의 흰색 마체와 대비시키며 기수에게까지 어둡다는 이미지를 덮어 씌운 것이다. 이는 관동, 관서의 지역 감정도 영향을 끼쳤고 마토바 기수도 항의 할 정도로 빌런 이미지가 강했다.][* 우연찮게도 라이스의 기수였던 [[마토바 히토시]]는 여러 레이스에서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우승한 전적이 다수 있어(라이스 샤워 포함) '[[히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참고로 라이스 샤워와 함께 1998년 황금세대의 대표 경주마 중 하나인 [[그래스 원더]] 또한 [[마토바 히토시]] 가 기승했으며 1993년 천황상 (봄) 당시 메지로 맥퀸에 기승했던 [[타케 유타카]]는 이후 [[스페셜 위크]] 에도 기승하게 된다. 1999년 아리마 기념의 전황을 봤을 때, 마토바 히토시가 라이스 샤워에 기승했을 때 사용했던 마크 전법을 1999년 아리마 기념 당시 타케 유타카가 기승했던 스페셜 워크에게 똑같이 시전했고 결국 그 전략이 먹혀서 그래스 원더가 승리했다. 타케 유타카의 입장으로서는 1993년 천황상 (봄)에서 맞붙었던 상대 기수에게 같은 방법으로 패배한 셈.]이니 '[[리그 브레이커|레코드 브레이커]]'니 하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우마무스메에서 입고 있는 검은색 승부복과 스킬이 발동되었을 때의 모습도 이 자객의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이다.[* 사실 우마무스메와 실제의 라이스 샤워의 취급은 조금 다르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일본의 경마팬에 따르면 실제로는 우마무스메에 묘사된 수준은 절대 아니었으며 라이스 샤워가 맥퀸을 이길때 평범하게 환호하던 사람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사실 천황상 봄 당시 2번인기였기에 역배라고 하기는 어렵다.] 부르봉을 꺾었을 당시는 [[쿄에이 보우건]]이 어그로를 대신 가져가서 단순한 다크 호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맥퀸을 자신의 힘으로 꺾은 뒤로는 맥퀸 팬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부르봉을 상대로 이긴 것까지 안 좋은 의미로 재조명되어 버렸다. 간사이(릿토) 출신의 위대한 두 경주마를 상대로 그들의 홈그라운드인 요도(교토 경마장)에서 두 차례나 잔치상에 초를 친 간토(미호) 출신의 말이라, 간사이 지역의 경마 팬들에게는 실로 악역 그 자체였다. 이외에도 [[나이스 네이처]]의 '''[[아리마 기념]]에서 4년 연속 3착 입상''' 기록 경신을 저지한 것도 라이스 샤워. 사실 이 때 나이스 네이처는 5착을 기록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라이스 샤워가 없었더라도 4착으로 기록 경신에 실패했겠지만, 절묘하게도 라이스 샤워가 3착을 해버리는 바람에 라이스 샤워의 레코드 브레이커 전설(?)이 유명해지는 데 큰 기여를 한 일화 중 하나가 되었다. ||[youtube(CRwLhfunMFA)]|| >'''"[[힐#s-2.1|악역(힐)]]인가 [[영웅|영웅(히어로)]]인가. 악몽인가 기적인가."''' >'''"悪役(ヒール)か、英雄(ヒーロー)か。悪夢か、奇跡か。"''' >----- >2012년 JRA The WINNER 시리즈 CM - [[천황상|천황상(봄)]] (라이스 샤워) 편 우마무스메 애니메이션 2기에서 차용된 이 CM에서도 라이스 샤워의 몸에 [[오니]]가 깃들었다거나 [[힐#s-2.1|악역]], 악몽이 언급되고 안광까지 서려있는 등 여전히 이미지가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천황상]] 승리 후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이기지 못하는 나날이 거듭되었다. [[트윈 터보|올커머 3착]]-[[천황상 가을]] 6착-[[재팬 컵]] 14착-[[아리마 기념]] 8착. 1994년에는 교토기념 5착-닛케이상 2착. 이후 천황상(봄) 연패를 위해 조교하던 중 3세때 골절된 부위에 다시 부상을 입었다. 이 땐 은퇴를 고려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어서 그대로 종마로의 길을 모색했으나, G1 2승이라는 경력이 있음에도 교배 의뢰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좋은 군마를 낳을 종마를 선별하는 것이 경마계의 주된 목표였던 과거와 달리 90년대의 경마계는 더 이상 [[천황상 봄]]을 우승했다고 해서 편하게 은퇴를 시켜주지도 않았고, 군마를 고르던 경험에서 비롯된 스테이어에 대한 수요도 없어져서[* [[천황상]]에서 우승한 말이 당대 최고로 인정받아 다음 천황상에 출주할 수 없는 전통이 없어진 것은 이미 십수년 전인 81년, [[천황상 가을]]이 3200m에서 2000m로 거리가 변경된 것은 83년이었다. 장거리 경마의 흥행 침체는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참고로 영국의 경우 클래식 삼관 경주인 2000기니 스테이크스와 더비 스테이크스를 승리하여 2관마가 되더라도 마지막 경주인 세인트 레저 스테이크스는 장거리니까 출주하지 않는게 당연한 것일 정도다. 참고로 1970년에 삼관을 달성한 현시점 영국의 마지막 삼관마인 [[니진스키 2|니진스키]] 이후 2관마가 세인트 레저에 출주한 경우는 2022년 기준 '''단 한번''' 뿐이다.][* 사실 니진스키조차도 그 당시에 세인트 레저 출주를 선언하자 로테이션으로 관련으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외면받게 된 것이다. 결국 종마로의 전환은 취소되었고, 생각보다 부상 회복이 빨라서 10월 말에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 후에도 연말 아리마 기념 3착-1995년 교토기념 6착-닛케이상 6착 등 부진한 성적이 계속되었다. 2년간의 부진의 원인으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상]] 당시 지나치게 혹독한 조교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고, 추가로 [[미호노 부르봉]], [[메지로 파머]]에게 패배한 후 맹렬한 투지를 보여줬다는 일화가 있는데 부진의 원인중 하나로 이들을 꺾은 후의 목표로 삼아야 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